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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로 변화하는 한류

 

시기별로 변화하는 한류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께 먼저 새해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말이 참으로 실감되는 지난 2024년였습니다.

 

아무쪼록 2025년에는 만사가 형통하는 올해가 되어 독자님들의 근심 걱정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또한 내내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시기별로 변화하는 한류의 태동

여러분께서는 시기별로 변화하는 한류의 태동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한류는 크게 세 단계에 걸쳐 성장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생성기(중국·동남아권으로 드라마 수출) → 2000년대 중반 심화기(일본에서 드라마 '겨울연가' 열풍) → 2009년~10년 정착기(K-POP 중심으로 시작된 신한류)입니다.

 

2000년대 중반 심화기, 일본에서 드라마 '겨울연가' 열풍

이 가운데 정착기에 해당되는 'K-POP 신한류'는 드라마·영화가 중심이 됐던 과거 한류와 그 양상이 다릅니다. 디지털 환경을 토대로 안정적인 성장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 1990년대 : 한류 태동기와 탄생

 

한류 태동기와 탄생

한국 드라마는 1970년대에 수출을 시작했지만, 세계 어디서든 지상파 위주에 채널이 몇 개 되지 않았던 방송 환경을 지녔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대만 케이블 방송사에서 일본 드라마보다 단가가 싸다는 이유로 한국 드라마를 편성하기 시작했는데,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중국 CCTV에서 '사랑이 뭐길래'가 수입되어 대히트 치자 2000년대까지 한국 드라마가 중국 주요 방송사를 통해 절찬리에 방송되었습니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또한 1990년대 후반에는,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권 방송사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수입단가가 싸면서도 생각보다 흥행성 있는 작품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자 하나둘씩 수입하기 시작했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자 해당 국가에서 한류의 발흥을 이끌어 내게 됩니다.

 

 

또한, 김완선은 대만에서도 큰 인기를 끌기도 했고, 김완선으로 인해 대만 사람들이 한국 가요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대만의 인기가수들이 한국 가요를 리메이크하기 시작했고, 대만 시장에 한국 가수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1998년 클론이 대만 진출할 당시 "김완선의 나라에서 온 인기그룹"이라고 소개했을 만큼, 김완선이 한류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 2000년대 초반 : 본격적인 해외 진출과 일본에서의 열풍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김윤진 주연의 영화 '쉬리'가 일본에서 개봉

2000년 1월, 한국 영화계의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김윤진 주연의 영화 '쉬리'가 일본에서 개봉되어 대흥행(매출 15억 엔)을 기록하면서 일본의 한류가 물꼬를 트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2월, H.O.T가 베이징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후, 중국의 한 신문이 "한류가 중국을 강타했다"라는 헤드라인을 뽑으면서 공식화되었습니다.

 

2000년 2월, H.O.T가 베이징 공연

그리고 어린 나이부터 일본 가요계로 진출하여 오리콘 차트를 제패하면서 대성공을 거둔 보아는, 한국의 K-POP이 일본 진출의 길을 열기 시작하는 초석이 되기도 했습니다.

 

2003년, 일본에서도 겨울연가를 통해서 일본의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배용준의 욘사마 신드롬과 함께 한국 드라마 인기가 많아지면서,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한류라는 단어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가수 보아

이처럼, 보아는 배용준과 함께 '가수는 보아, 배우는 배용준' 이런 식으로 1차 일본 한류열풍의 주역으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 2000년대 중반~후반 : 지속적인 해외 수출과 영향력 증가

 

게임 한류 시초, '라그나로크'

2000년대 초반에서는 게임 한류도 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게임 한류' 시초에 있는 게임은 당시 그라비티에서 개발한 라그나로크 온라인으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을 필두로 기타 아시아 국가와 해외에도 서비스를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말한 '쉬리'가 일본인들에게 "어? 한국 영화도 꽤 재미있는데?"라고 할 정도였다면, 배용준은 일본 여성들에게 '그동안 잊고 살던 첫사랑'이란 이미지를 심어준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겨울연가

'겨울연가' 문서에서도 자세히 나와 있지만, 하네다 공항이나 투숙하던 호텔 주위에 모여서 손을 한 번만이라도 흔들어주기를 바라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장면은 흡사 첫사랑을 고대하는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일본의 한류 열풍의 기반을 다진 한국 연예인은 배용준이 맞습니다.

 

그 시절, 일본에서는 아직 한류라는 단어도 생소했고 나중에 중화권에서 만들어졌지만, 한류 열풍의 원인은 중화권, 동남아와 일본은 방향성이 서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파워풀한 댄스

중화권에서는 이전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파워풀한 댄스를 하는 K-POP의 한국 아이돌과 트렌디 드라마를 통해서 10대, 2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누렸다면, 일본에서는 겨울연가와 같은 멜로드라마로 1970년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방신기 공연

2000년대 후반에 들어 일본에서도 동방신기의 인기를 시작으로, '신한류 붐의 시대'로 불리는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열풍이 불어 중년층을 넘어서 젊은 층으로까지 인기가 확산되었습니다.

 

드라마 '대장금'

2000년대 후반 시기에 들어서 '대장금' 드라마 이후부터, 딱히 아시아권에서 큰 붐을 일으킨 한국 드라마가 많지 않아서 영향력이 약화되었다고 생각되기 쉽습니다.

 

 

◆ 2010년대 초반 : 신한류 붐

 

원더걸스 공연

이전 시기의 한류의 핵심인 드라마가 중장년 이상층에서 영향력을 끼쳤다면, 이 시기부터 한류를 향유하는 연령대가 10~20대로 크게 낮아지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연령대의 이동만이 아닌 한류의 확장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됐는데, 10~20대는 기호가 굳어지기 전의 연령대이자 다양한 기호에 도전할 수 있는 연령대고, 사회 기반층으로 성장했을 땐 동일하게 기호가 굳어지지 않은 자식 세대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연령대기 때문입니다.

 

슈퍼주니어

2010년대 초반인 2010~2013년 당시의 한국 대중가요계에서는 카라, 2NE1, 원더걸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빅뱅 등의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K-POP 가수들이 아시아권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소녀시대 공연

아시아를 넘어 멕시코, 페루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권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한국 아이돌의 인기가 정말 대단하였습니다. 특히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는 핵폭탄급 인기를 누리는 지역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포맷이 외국으로 수출되면서 고무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 2010년대 중반~후반 : 한류의 세계화 진행

 

방탄소년단 공연

지금까지 아시아권 시장에서만 고무적인 흥행을 거두고 유럽권과 북미권에서는 그저 작은 팬덤을 형성한 수준에 그쳤던 한류의 한계점을 벗어나 K-POP 가수들의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열광하는 전무후무한 상황을 만들어내기 시작함에 따라, 신한류 붐의 지속적인 성장과 새로운 문화부흥의 희망과 가능성을 품게 됐다는 점입니다.

 

방탄소년단이 2010년대 중후반부터 서구권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하더니, 북미-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팬덤이 불어나면서 K-POP의 인지도가 급상승했습니다.

 

싸이 말춤 공연

'싸이'가 1회 성으로 보여줬던 화제성을 넘어 팬덤이 엄청난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각국의 주요 언론들에서도 이에 대해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블랙핑크 공연

원 히트 원더였던 '싸이'와 다르게 장기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방탄소년단 말고도 BLACKPINK, EXO 등 서구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그룹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외국인들도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의 무대에서 활동하는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의 연예 기획사로 직접 찾아와서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사례도 많아졌습니다.

 

 2013년 말부터 SBS에서 방영한 '별에서 온 그대'

2014년에 가장 두각을 드러낸 분야는 단연 드라마였습니다. 2013년 말부터 SBS에서 방영한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과 대만에서 사회 현상이라고 칭할만한 폭발적인 인기를 보인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배우 김수현, 전지현이 중국에서 찍은 CF 제품의 장백산 표기 논란으로 웹상이 시끄러워진 적도 있었습니다.

 

이후 한국산 드라마가 중화권 시장에 갖는 의미가 더욱 각별해져서 '괜찮아, 사랑이야'가 약 20억 원에 수출되는 등의 성과를 보였습니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2015 해외 한류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인기 있는 한국 문화 콘텐츠로 'K-pop'과 '드라마'를 누르고 '한식'이 1위에 올랐습니다.

 

◆ 2020년 ~ 현재 : 한류의 기성 대중문화화

 

 

이 당시에 선진국들도 TV 채널이 몇 개 내외 수준이었습니다. 서독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도 자체 TV 채널은 3개 내외 수준인 수준이었고, 다채널화가 이루어졌다던 일본도 7개 내외였습니다.

 

미국 역시 지상파 채널은 전국 단위로 4개 내외였던 시절로 케이블 방송은 1980년대 중반 이후에나 보급이 시작되었습니다.

 

젝스키스 공연

NRG가 국내에서는 1.5군 정도였지만, 중화권에서는 H.O.T.나 젝스키스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NRG는 한류 1세대 가수라는 수식어가 당당하게 붙게 되었습니다.

 

특히 조용필, 김연자, 패티김, 계은숙, 이박사가 엔카를 통해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바가 있으며, 이들은 이박사를 제외하면 모두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했습니다.

 

조용필 공연

특히 조용필은 이미 1984년 타니무라 신지, 알란 탐과 함께 일본에서 공연을 했고, 1988년 8월 6일 중국 베이징 장성(長城) 호텔에서 한국 가수 최초로 중국에서 콘서트를 열었을 정도로 한국이 개발도상국과 독재국가이던 80년대 중반부터 이미 동아시아 가수의 대표주자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수빈의 'I'm Falling in Love' 뮤직비디오

1993년에 나온 하수빈의 'I'm Falling in Love' 뮤직비디오가 홍콩 M 티브이 전파를 탄 적이 있다고 하며, 1995년에는 김건모 '핑계'의 영어 버전이 홍콩 M 티브이에서 13위에 오른 바가 있습니다. 김완선도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접은 후 1993년부터 홍콩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김건모의 '핑계' 무대

참고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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