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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부터 12월까지의 국내 개봉작들

 

 

올해도 어김없이 국내 개봉작을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는 그 시기가 돌아왔습니다.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는, 그야말로 '연말 분위기'가 제대로 나지 않는 이 시기에 올해의 영화나 올해의 OTT 추천작들을 뽑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야 할 것은 해야 하므로, 늘 지켜오던 루틴은 지켜야 하므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요즈음의 세계를 뒤로하고 올해도 국내 개봉작 중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이곳에 옮겨봅니다.

 

작년에 비해서 제법 다양한 영화들이 개봉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호러 영화 장르의 약진 때문일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아래 리스트의 작품들은 2024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의 국내 개봉작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영화제에서 공개된 작품들이나 재개봉작은 제외되었습니다.

 

1.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존 오브 인터레스트'

1, 2위 순위를 놓고 꽤 많은 고민을 했지만, 역시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올해의 영화로 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홀로코스트를 현재로 끌어오는 영화는 다양했지만, 이 영화는 그 이야기를 전면으로 보여주거나 충격적으로 묘사하는 방법 대신, 보여주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음으로 그 공포와 끔찍함을 극대화합니다.

 

 

때문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음향이 이 영화를 가장 돋보이게 만드는 동시에 가장 탁월하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보여주지 않기' 방식에서 배제되는 것이 바로 음향으로, 소리를 통해 이 모든 상황을 판단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묘사하고 싶은 공포심은 더 극대화됩니다.

 

 

'악의 평범성'을 정면으로 관객에게 들이대는 영화인 동시에, 위화감으로 가득한 화면들의 연속 사이에서 간접적인 묘사만으로 고통을 극대화합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중 역사상 최고의 것이라는 다수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해는 정말로 이 영화를 빼놓고 지나갈 수 없습니다.

 

2. '추락의 해부'

 

'추락의 해부'

외딴 시골, 남편의 갑작스러운 추락사로 갑작스럽게 용의자로 지목된 유명 작가인 산드라 휠러의 '추락의 해부'는 목격자가 그들의 아들과 안내견이 전부인 이 상황에서, 남자의 사망이 의도된 살인인지 우발적인 자살인지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사고였는지를 밝혀나가는 꽤 단순한 플롯의 영화입니다.

 

 

'사망 사건'을 조사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법정 공방 시간에 할애합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플래시백이 거쳐 가고 관객들이 알 수 있는, 혹은 유추할 수 있는 어떤 정보들이 조합되며, 이 사건은 말 그대로 아주 낱낱이 '해부'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해부가 일어남에 따라, 산드라를 구성하고 있는 가족의 면면이 아주 디테일하게 펼쳐집니다. 개인의 사건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가족의 전반을 아우르는 동시에 그 어떤 판단도 섣불리 하지 못하도록 할 때, 이 영화의 중심이 드러난다. 진실을 알려주는 대신 진술을 구성하는 다양한 파편들을 전달해 주는 방식입니다.

 

 

그 방식으로 인해 수만 가지 갈래로 찢기는 생각들. 밝혀질 수 없고 밝히지 않는 게 '중요'한 서사인 이 영화를 보고 나와, 단번에 이건 올해의 영화 중 하나임을 직감했습니다. 치밀하게 설정되고 직조된 이야기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 것일 수도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합니다.

 

3.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보여줄 것은 이제 다 보여주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앞에 이 영화가 도착했습니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을 빌리자면, '소름 끼칠 정도의 단순함', 그게 바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들어있습니다.

 

 

전작인 '드라이브 마이카'를 빼닮은 듯한 무대의 설정, 지독하게 정적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한 공간들을 지나면, 대립이 시작됩니다.

 

 

눈에 보이는 표면적 대립은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시골 마을에 정착하고 사는 사람들과, 그 시골 마을을 개발의 명목과 지역 경제 활성화의 명목으로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 그사이에 오가는 여러 가지 폭력적이고 유머러스하기도 한, 지극히 아이러니한 이 지점들을 카메라가 훑다가 돌연 폭주합니다.

 

 

 

 

흔히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마지막을 위한 영화라고 하지만, 그 폭주를 위한 빌드업, 그러니까 불안과 불길에 대한 복선을 깔고 그것이 폭발되기까지 '덫'을 놓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탁월함, 그것이 너무나도 반짝이는 수작입니다.

 

4. '오멘: 저주의 시작'

 

'오멘: 저주의 시작'

'오멘: 저주의 시작'은 과소 평가되었다고 봅니다. 이 영화는 '오멘 신드롬'을 낳은 1976년작 '오멘'의 프리퀄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고, 그를 토대로 수십 년째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오멘 시리즈'의 징크스를 말끔히 떨쳐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기 있는 프랜차이즈 호러영화의 참패 속에서 완벽히 다른 방식으로, 원작에 대한 최대한의 오마주를 잊지 않은 채 그 자체로 빛나는 후속의 영화는 드물다고 봅니다.

 

 

공포영화 장르 내에서뿐만 아니라 수많은 블록버스터 시리즈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악마의 씨'나 '엑소시스트' 같은 전통적인 고전 호러영화의 범주에서 엇나지 않으며 온전히 새로운 장르와 이야기를 창조해 냈습니다.

 

 

남성 중심적으로 전개되었던 이 시리즈의 고전적인 오컬트를 완벽하게 다른 시각으로 리부트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아주 오래도록 기억되고 회자되어야 합니다. 특히 공포 영화 팬들이라면, 모두가 이 영화를 2024년의 베스트로 꼽아 마지않았을 것입니다.

 

5. '룩 백'

 

'룩 백'

2024년 개봉작을 꼽는데 역시나 '룩 백'을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체인소맨'으로 스타덤에 오른 후지모토 타츠키의 동명 만화이자 단편인 '룩 백'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몹시 짧지만 아주 강렬하게 감정의 모든 부분을 자극합니다.

 

 

미치도록 슬프기도 하고 미치도록 아름답고 두근거리는 순간이 교차하는 이 작품을 뭐라 달리 말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해 봅니다.

 

 

가까이서 보면 커다란 산 같이 막막했던 시간들이 그 시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느 지점에서 다시 바라볼 때 한낱 가벼운 것이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내가 걸어온 시간들임을 인정하고 '나를' 보듬어 안아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룩 백'은 이와 같은 감정의 굴곡을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단평으로 이런 감상적 리뷰는 적절하지 않지만, 달리 어떤 수식으로 이 영화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출처 : 브런치 스토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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