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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엔(tvN) 드라마 '정년이'의 신드롬

 

최초의 ‘여성국극’ 드라마, ‘정년이’의 흥행이 보여주는 것

요즘 SNS에서 핫한 드라마 혹시 보고 계신가요?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를 저는 8회까지 봤는데, 바로 드라마 '정년이' 이야기입니다.

 

'정년이'는 최초의 '여성국극' 드라마로, 1950년대 중반 국극 배우가 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소리 천재 소녀 '정년이'의 성장담을 배경으로 다뤄지는 드라마입니다. 또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 간의 사랑과 우정, 갈등에 주목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드라마 '정년이'가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주연 배우 정은채가 팬들과 결혼식장에서 찍은 기념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온라인 캡쳐)

재밌는 드라마는 원래 그 안에 얽힌 백그라운드와 속이야기를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법입니다. 우리나라 여성국극의 흥망성쇠와 '정년이' 방영을 둘러싸고 벌어진 방송계 갈등, 글로벌 OTT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정년이'의 흥행이 갖는 의미까지인지 알아보겠습니다.

 

tvN 주말극 ‘정년이’ 주요 장면. 사진 tvN

tvN 드라마 '정년이'가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서이레 작가가 스토리를, 나몬 작가가 작화를 담당한 동명의 웹툰을 드라마화한 '정년이'의 첫 화 시청률은 4.8%로 시작했으나, 6화는 13.4%를 기록하며 고공 행진 중입니다.

 

* '서 이레' 작가 스토리, '나몬' 작가가 작화를 담당한 동명의 웹툰을 드라마화한 '정년이'

 

'정년이' 원작자 서이레-나몬 작가의 찬사 "움직이는 정년이를 보니 감동" 사진 tvN

이 드라마는 1950년대 중반, 서울로 상경해 국극 배우로서의 삶에 도전하는 소리 천재 '정년이'와 여성들의 연대, 성장기를 담았는데, 오늘은 드라마 '정년이'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여성국극의 흥망성쇠와 편성 변경 관련 잡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드라마 '정년이' 주연진 소개

 

김태리 : 윤정년 역, 매란 국극단 연구생(좌), 신예은 : 허영서 역, 매란 국극단 연구생(우)
(좌)라미란 : 강소복 역(매란 국극단 단장), (우)문소리 : 문옥경 역(매란 국극단 단원)
김윤혜 : 서혜랑 역 매란 국극단 단원(좌), 우다비 : 홍주란 역 매란 국극단 연구생(우)

◆ 여성국극, 그 화력의 시작

 

* 옥중화(獄中花)

 

1948년 여성 국악인들이 모여 선보인 ' 옥중화(獄中花)'

1948년 여성 국악인들이 모여 선보인 '옥중화(獄中花)'를 계기로 시작된 여성국극은 한국전쟁 직후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배우들을 1세대 여성 국극 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옥중화와 정년이

드라마 '정년이' 오프닝에서 배우들을 힘 있게 소개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1세대 여성국극인 '조영숙' 명인입니다. 올해 90세의 조영숙 명인은 올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Sync Next 24: 조 도깨비 영숙' 무대에 오른 현역 예술인이기도 합니다.

 

* 1세대 여성국극인 '조영숙' 명인

 

과거에 공연된 여성국극 '선화공주'의 한 장면(좌), (우)조영숙 명인이 '발탈'로 국가무형문화재에 지정된 2012년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한국일보 자료사진)

여성국극은 소리, 춤, 연기가 어우러지는 종합 예술입니다. 배우가 연기로만 승부를 거는 연극과 다르고, 1인이 모든 배역을 도맡는 판소리와도 차이가 있어 다른 공연예술과 장르적으로 구분됩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라면, 남자 역과 여자 역을 모두 여성 배우가 맡아 연기한다는 점입니다.

 

정년이에서 남역 배우 전문 캐릭터 '문옥경'으로 등장한 '정은채' 배우

그 시절, 여성국극의 인기는 무대 위에서 남자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왕자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이들의 인기가 정말 대단했다고 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정은채' 배우가 매란 국극단 소속 단원들은 물론이고, 관객들을 마음까지 사로잡는 남역 배우 전문 캐릭터 '문옥경'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 남역 배우 전문 캐릭터 '문옥경'으로 등장한 '정은채' 배우

 

tvN ‘정년이’ 정은채, 매란국극단 최고스타 문옥경

'조금앵' 명인이 여성 팬과 가상의 결혼사진을 촬영한 건 여성국극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덕후들의 필수코스로 자리 잡은 최애와 함께 찍는 4컷 사진전에 여성국극의 세계에서는 좀 더 과감한 팬 서비스가 있었던 겁니다.

 

'정년이'에서 매란 국극단 연구생 '박초록' 역으로 분한 '현승희' 배우는 오마이걸 멤버로서의 활동을 토대로, 1950년대 여성국극과 2024년의 케이팝 아이돌 씬이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 '정년이'에서 매란 국극단 연구생 '박초록' 역으로 분한 오마이걸  '현승희' 배우

 

'박초록' 역으로 분한 오마이걸  '현승희' 배우

먼저, 극단의 연구생 제도는 아이돌 연습생 육성 시스템을 닮아있습니다. 국극 무대에서 비중 있는 배역을 차지하기 위해 극단 내부의 소녀들끼리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이돌 데뷔 조를 위한 경쟁 구도와 비슷하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공연일에 극장 앞의 매대에서 판매되던 배우들의 사진은 요즘 다양하게 제작되는 케이팝 굿즈의 전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접어들며 여성국극은 점차 쇠퇴하게 됩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영화, TV 등의 매체가 도입되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정년이 드라마에서의 김태리 배우

드라마에서도 TV와 함께 하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종로방송국 PD '박종국'(김태훈)의 제안으로 '정년이'가 극단을 잠시 떠나 방송의 맛을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연스레 1960년대의 대중들은 새로운 취향을 가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여러 극단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며 문을 닫게 됩니다.

 

여성국극의 진화를 위한 도전, 안산을 대표하는 화가 단원 김홍도이야기 ‘화인뎐’(사진,안산문화재단)

다행히도 20세기 후반까지 명맥이 끊겨있던 여성국극을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고 있습니다. 2020년, 조영숙 명인의 제자들인 박수빈, 황지영 배우는 '여성국극제작소'를 설립하고, 여성국극을 배우고 싶은 신규 단원들을 찾는 공개 오디션을 개최했습니다. 이들은 2024년 10월,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의 생애를 다룬 창작 국극 공연 '화인뎐'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 '조영숙' 명인의 제자들인 '박수빈', '황지영' 배우는 '여성국극제작소'를 설립

 

여성국극 주역 박수빈 황지영 배우 포스터 사진촬영 스케치!

◆ '정년이'는 왜 tvN에서 방영되어야만 했을까?

 

드라마 '정년이'는 여성국극의 매력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 극중극에 힘을 쓰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드라마 '정년이'는 여성국극의 매력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 극중극에 힘을 쓰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드라마가 끝나면, 이날치 보컬리스트이기도 한 권송희 소리 감독, 이이슬 안무 감독 등등 극중극을 위한 엔딩 크레딧이 길게 이어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춘향전에서 방자역으로 정년이가 완전 날아다녔잖아요?

그만큼 제작진이 국극 무대 연출과 고증에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티빙은 '춘향전', '자명고' 등을 끊김 없이 볼 수 있는 '정년이' 속 국극 풀 버전 콘텐츠를 별도 공개하며, 시청자들이 공연예술 자체로서의 여성국극을 감상해 보길 제안하고 있습니다.

 

극중극 장면을 보면 무대 위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 하나하나에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 눈에 띄는데, 이는 최근 논란이 일었던 관객 에티켓인 '시체 관극'과는 무척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정년이에서 제일 좋았던 장면!

실제로 제작진은 촬영 전 '관객 리액션 교육'을 실행했다고 합니다. "1950년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라는 의도가 담긴 연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드라마 '정년이'는 편성 변경으로 인한 잡음이 있었습니다. MBC에서 방영되기로 했던 드라마가 최종적으로는 tvN에서 공개된 것인데, 웹툰 '정년이'의 초기 제작사는 총 세 곳(스튜디오 N, 매니지먼트 mmm, 앤피오엔터테인먼트)이었습니다.

 

웹툰 '정년이' 그림으로 풀어내기 쉽지 않은 춤과 소리, 연기를 탁월하게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는다.
배우 김경수(왼쪽)와 김진진이 출연한 국극 '별 하나'(1958)의 포스터(왼쪽 사진)와 웹툰 '정년이' 속 한 장면. 영희야놀자ㆍ네이버웹툰 제공

이들은 '옷소매 붉은 끝동'을 연출한 정지인 감독을 섭외하면서, MBC에 편성과 드라마 제작비 투자를 제안했지만 협상이 잘 되지 않아 결국 CJ ENM 산하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과 손을 잡게 됩니다.

 

*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 '정년이'의 회당 제작비

 

촬영 스태프 모습에 비해 너무도 비싼 배우들 회당 출연비는?

'정년이'는 회당 20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제작비 이슈는 법정 분쟁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방영 이후에는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드라마 '정년이'의 회당 제작비는 약 28억 원으로, 총제작비는 336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드라마는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여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드라마 정년이의 짝꿍, 김태리와 우다비

하지만 이런 현상을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따르면 방영일 기준으로,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 141편에서 2023년 123편으로 줄었고, 올해는 그보다 더 줄어든 107편에 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촬영을 모두 마쳤음에도 편성 대기 상태에 있는 '창고 드라마'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순환이 가로막힌 겁니다. 그러는 동안 방송사와 OTT는 스포츠 중계나 예능 제작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 편성 대기 상태에 있는 '창고 드라마'들

 

창고에 있는 DVD들

그러니 무언가가 빠르게 뜨고 또 빠르게 사라지는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정년이'를 권합니다. 이야기 내부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 여성국극과 새로운 미디어 간의 경합 구도를 보여주는 반면, 이야기 바깥에서는 드라마의 편성과 관련하여 동시대 콘텐츠 업계의 급변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바람이 부는 어느 쌀쌀한 가을 날, 나는 또 다시 책속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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