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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살 한국 불교는 어떻게 힙한 종교가 됐을까?

 

관람객들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체험 부스에서 전통 불교 타악기인 목어를 직접 두드리며 불교 문화를 즐기고 있다.

"불교 또 나 빼고 재밌는 거 하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깊은 산속에 있는 절, 차분한 목탁 소리가 연상되는 '불교'와 '재미'라는 키워드가 양립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겠지만, 지난 4월 서울 코엑스에서 진행된 2025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이 두 키워드가 공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병맛' 굿즈, AI 출가 체험, 임종 체험 등 수많은 참가자가 '재밌는 불교'를 체험했습니다. 이 재미가 어느새 입소문을 타면서 사전등록자가 전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한 4만 명, 최종적으로는 관람객 수 2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2025 불교박람회, 당신의 깨달음이 여기서?

불교의 이런 인기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합니다. 2024년 한국리서치의 '종교 인식 조사'에 따르면 18~29세에서 '무종교'라고 답한 비율이 무려 69%로, 2030 세대의 종교에 대한 관심도는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는 어떻게 2030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 불교박람회는 어떻게 'MZ 핫플'이 됐을까?

 

2025서울국제불교박람회 개막, 전년 대비 참여업체 3배

'불교는 힙하다'라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왔던 것은 2024년 4월 진행된 '2024 서울국제불교박람회'입니다. 원래 불교박람회는 2013년부터 매년 불교 단체들이 진행해 온 연례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2024년의 박람회는 시작부터 달랐습니다. 종교 박람회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파격적인 슬로건, '재밌는 불교'를 내세웠습니다.

 

2025서울국제불교박람회 스틸 컷

그리고 주최 측은 이 슬로건을 제대로 지켰습니다. AI로 구현된 마애 부처님과의 고민 상담, 불교 밈이 적힌 각종 굿즈, '뉴진스님'으로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 윤성호 씨의 EDM 디제이 파티 등 지금껏 종교 행사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재미를 꽉꽉 채웠습니다.

 

“고통 이겨내며 극락왕생!” 뉴진스님 목탁 춤에 모두가 ‘부처핸섬’

이뿐만 아니라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청년 리더 500명과 함께 진행한 고민 상담 토크쇼 '담마 토크'를 프로그램을 통해 '공감'과 '치유'까지 잡았습니다.

 

이런 파격적인 변화 덕분일까요? 작년 불교박람회의 관람객 수는 전년 대비 3배 넘게 증가했고, 전체 관람객 중 2030 세대의 비율이 무려 80%를 기록할 정도로 젊은 세대를 제대로 사로잡았습니다.

 

불교가 재밌다는 MZ, 출가상담 부스 올해도 ‘핫플

2024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끌었습니다. 여러 SNS에서 박람회를 다룬 콘텐츠가 쏟아졌고, '힙하다', '불교는 호감이다'라는 등의 후기가 나왔습니다.

 

이런 불교의 인기는 박람회가 끝난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2024년 8월 처음 개최된 '2024 부산 국제불교박람회'에도 5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갔는데, 이 중 10~30대가 약 80%에 달한 것입니다.

 

2025서울국제불교박람회 스틸 컷

올해도 열기는 이어졌습니다. 지난 4월 진행된 2025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사전등록자가 1년 전보다 4배 이상 증가한 4만 명에 달했고, 4일 만에 관람객 수 2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무소유하러 갔다가 풀소유 하고 왔다", "올해 부산·대구 불교박람회도 기대된다"라는 관람객의 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불교박람회는 특정 종교만의 행사를 넘어 2030 세대의 축제로 올라섰습니다.

 

◆ 불교, 묘하게 트렌디하다.

 

양양 낙산사, ‘명상+서핑’ 템플스테이

사실 불교는 박람회 이전에도 2030에게 주목받고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템플스테이가 있습니다.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힐링하고픈 젊은 세대에게 템플스테이는 산속에 있는 절에서 차분하게 명상하고, 건강한 사찰음식을 먹는 '촌캉스'와 다름없었습니다.

 

2024년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첫 시작연도인 2002년 대비 53배 늘어난 62만 명을 기록할 정도였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인기를 끈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그저 일상인 절에서의 하루가 2030 세대의 떠오른 '촌캉스' 트렌드와 맞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년 넘은 템플스테이, '쉼의 시간'은 계속된다

이렇게 트렌드와 만난 불교의 요소는 또 있습니다. 불교의 핵심 가치인 '불살생' 원칙을 지키는 사찰식도 비건 트렌드를 타고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유서 깊은 사찰 화엄사는 비건 식품 업체와 협업한 '화엄사 템플버거'를 출시해 화제를 모았는데요. 팝업스토어에 5,000여 명의 방문객을 불러오며 불교의 '힙함'을 더욱 끌어올렸습니다.

 

"아니? 절에서 햄버거를?" 화엄사, 비건버거 출시

대한불교조계종은 CJ제일제당과 손잡고 '사찰식 팥죽', '꽈리고추 식물성 장조림' 같은 제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은 사흘 앞둔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일대에서 열린 연등회 전통문화마당에서 시민들이 CJ제일제당의 사찰식 팥죽을 구입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불교가 트렌드에 잘 올라탄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불교는 트렌드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트렌디한 것들을 불교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시도를 많이 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나는 절로'입니다. 조계종은 인기 연애 예능 '나는 솔로'에서 착안한 1박 2일 사찰 소개팅 '나는 절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참가 신청자가 몰리며 경쟁률이 8대 1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 연화사는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5일까지 ‘부처님 생신 카페’를 열고 ‘연꽃라떼’ 등 음료를 비롯해 소원성취 부적 등을 판매한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에는 한 사찰에서 '부처님 생카(생일카페)'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아이돌 생일 카페 문화가 불교에 등장한 것입니다. 생카에 참석한 한 20대는 "SNS에서 보고 난생처음 절에 왔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걸그룹 아이들(i-dle) 소연이 직접 '10단 딸기시루'를 만들어 부처님 생일카페를 찾은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36만 건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걸그룹 아이들(i-dle) 소연이 직접 '10단 딸기시루'를 만들어 부처님 생일카페를 찾은 유튜브 영상

템플스테이도 진화하는 중입니다. 예전에는 새벽 예불부터 참선까지 꼬박꼬박 따라야 하고 발우공양을 해야 했는데, 요즘에는 이런 '체험형 템플스테이' 대신 '휴식형 템플스테이'가 늘고 있습니다.

 

예불은 원할 때만 참여해도 되고, 공양 시간에도 밥을 함께 먹고 싶으면 먹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장원영 따라 너도나도” 불티나게 팔렸다? 알고봤더니, 불교의 핵심 사상을 담은 책 '초역 부처의 말'은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의 추천으로 바이럴을 타며 베스트셀러에 올라

불교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쌓인 덕분인지 출판계에도 불교 열풍이 불어닥쳤습니다. 불교의 핵심 사상을 담은 책 '초역 부처의 말'은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의 추천으로 바이럴을 타며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는 2년 연속 판매량이 늘고 있으며 '불교', '부처' 등을 키워드로 한 인문 분야 도서의 올해 판매량은 작년에 비해 20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 불교가 힙해진 비결, 포용과 치유

 

지난달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불교박람회&제13회 붓다아트페어’에서 관람객들이 굿즈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불교의 이런 '트렌디함'의 배경에는 자비 사상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타 종교에 배타적인 경우가 많은 반면, 불교는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모두를 포용하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믿지 않으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라며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나이나 성별, 국적 등으로 누군가를 차별하지도 않습니다. 포용은 2030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이기도 합니다.

 

포용과 치유, "불교를 통해 치유받으면 충분하다"라고 말할 뿐인 불교

끊임없는 경쟁과 각종 사회적 갈등으로 지칠 대로 지쳤기 때문입니다. 이런 젊은 세대에게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불교를 통해 치유받으면 충분하다"라고 말할 뿐인 불교의 'Chill'한 태도 덕분에 젊은 세대는 불교를 '힙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불교가 '힙한' 종교로 거듭나려고 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10년 전에 비해 출가자 수가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데다 신도 수도 꾸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는 불교만의 문제는 아니며, 우리나라에서 종교가 없는 사람의 비율은 계속 늘고 있다고 합니다. 최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절반가량이 '무종교인'이며, 연령대가 낮을수록 무종교인 비율은 훨씬 높다고 합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4월 19일 서울 연지동 연동교회에서 ‘제1차 목회데이터포럼’을 열고, ‘무종교인의 종교 의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이번 조사를 공동 진행한 정재영 교수가 ‘한국 무종교인의 종교적 특성’을 발표하고 있다.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높아진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종교의 존재 의미에 대한 대중들의 의구심입니다. 이는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한국인의 종교' 설문조사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요즘 종교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십니까?"에 대한 질문에 "도움 주지 않는다"라는 응답이 2014년 38%에서 2021년 62%까지 늘었고, 비종교인은 무려 82%나 "도움 주지 않는다"라고 응답했습니다. 즉 "굳이 종교가 필요한가?"라는 의구심이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가 깃들어 부처님 세상이 되길”

특히 젊은 층에서 종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 어느 종교든 지속가능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는 기존 방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 중입니다.

 

'탈종교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종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 불교가 핵심 가치인 '치유와 평화'를 우리 사회에 널리 퍼뜨리는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길 앞으로 기대해 봅니다.

 

인용 문헌 : 뉴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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