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물가 전방위 상승, '월급 올라도 가난해'
서민 덮치는 전방위 물가 상승, "고환율에 물가 잡기 어렵다"
생활 물가가 전방위로 치솟고 있습니다. 식료품비와 외식비는 물론 교통비, 의료비, 교육비, 아파트 관리비까지 올랐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이 12일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이달 대형 마트·편의점·슈퍼마켓 등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평균 가격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464개 품목 중 절반(227개)이 지난해 12월보다 비싸졌습니다. 세제, 샴푸, 티슈 등 반복 구매가 잦은 생필품은 56개 품목의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신선식품의 오름세도 가팔랐습니다. 농산물 가격 플랫폼 팜에어·한경에 따르면, 무 도매가격은 ㎏당 1,316원으로 1년 전보다 163% 급등했습니다.
아라비카 커피 원두의 국제 시세가 t당 9,000달러를 넘어서며, 1년 전에 비해 두 배로 치솟자 커피 전문점 커피 가격은 10% 안팎 상승했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20여 개 식품·외식업체가 콩과 밀 등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섰습니다.
사교육비도 들썩입니다. 전국 체인망을 갖춘 A 어학원은 인건비와 전기료 상승 등을 이유로, 최근 학원비를 119만 7,000원에서 123만 7,000원으로 인상했습니다.
3월에는 서울과 경기지역 지하철 요금 인상이 예고돼 있어, 서민 사이에서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가 오름세가 계속되면서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의 그림자가 덮치고 있습니다. 스크루플레이션은 '쥐어짜다'라는 뜻의 '스크루(screw)'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용어로,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가 침체하고 임금도 제자리에 머물러 중산층 가계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원자재값과 인건비 상승, 고환율 등이 겹쳐 당분간 물가를 잡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자재값과 원·달러 환율 상승은 이제 고정 변수"라며 "당분간 도미노 가격 인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 옷·화장품도 다이소에서 구매
지난해 취직에 성공한 사회 초년생 김 모 씨(24)는 요즘 다이소에서 장을 본다고 합니다. 3,000원짜리 잠옷부터 입술에 바르는 립글로스, 컵라면, 햇반까지 다이소에서 샀다고 합니다.
화장품은 올리브영을 이용해 왔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발길을 끊었다고 합니다. 생활 물가가 크게 올라 주머니 사정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 씨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려 해도 7,000원 가까운 돈을 지출해야 할 정도로 물가가 오르다 보니 돈 쓰기가 정말 무서워졌다"라고 했습니다.
김 씨의 소비생활 변화는 다락같이 오른 요즘 물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이 12일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이달 대형 마트·편의점·슈퍼마켓 등에서 판매하는 상품 평균 가격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464개 품목 중 절반가량(227개)이 지난해 12월보다 비싸졌습니다.
세제·샴푸·티슈 등 반복 구매가 잦은 생필품은 56개 품목의 가격이 올랐습니다. 유한킴벌리의 '크리넥스 울트라클린 30 롤'은 2만 8,784원에서 3만 4,812원으로 21% 상승했습니다.
식료품 가격 오름세도 가팔라, 가공식품에서만 140개 품목 가격이 올랐습니다. 사조대림 맛살은 29%, 롯데칠성 비타민 음료는 24% 상승했습니다.
신선식품군에서도 배추(46%) 계란(17%) 갈치(16%) 등 농·축·수산물이 일제히 오르면서, 전체 56개 품목 중 절반 이상(31개)이 비싸졌습니다.
식품업계에서는 음식값이 당분간 안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고환율 여파로 수입 물가가 급등하고 인건비 부담도 늘었는데,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라며 "식품업계 평균 영업이익률이 5%대 중반에 불과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추장, 간장 등 양념류와 카놀라유 등의 가격까지 크게 올라 음식점 가격 인상 압력도 커지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 지하철 요금, 미용 비용도 올라
생활 물가 인상은 전방위로 번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월평균 관리비는 ㎡당 3,242원으로 전년 대비 5% 상승했고, 수도권 지하철 요금은 3월부터는 1,400원에서 1,550원으로 10.7% 인상됩니다.
수도 요금 추가 인상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2022년 t당 평균 73원 올린 데 이어 상반기 추가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입니다.
작년 말 서울 지역 성인 여성 커트 1회 비용은 2만 2,769원(행정안전부 발표)으로 1년 새 7.2%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남성 커트 가격도 3.1% 올라 1만 2,538원이 됐습니다.
약값도 오르고 있습니다. 소화제(8.3%)와 피부질환제(7.8%), 감기약(5.2%) 등 가격 상승률은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2.3%)을 웃돌았으며, 이런 추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령제약은 진해거담제 '용각산쿨' 가격을 7~8% 인상했습니다. GC녹십자는 간판 품목인 소염진통제 '탁센' 가격을 3월에 16% 올리기로 했습니다. 박카스도 3년 만에 10% 이상 오른다고 합니다.
우황청심원의 원재료인 우황 가격이 2010년 ㎏당 1,800만 원 수준에서, 지난해 말 2억 6,000만 원으로 급등하면서 한방약 가격을 밀어 올리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한방약 소비자물가지수는 124.63으로 전년(112.82)보다 10.5% 올랐습니다. 이 지수 상승률이 10%를 넘어선 것은 물가지수 집계를 시작한 2005년 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전방위적인 생활 물가 인상에 실질 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생활 물가의 가파른 상승은 고소득층보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에 더 큰 타격이 된다'라며 '이로 인해 소비가 둔화하면 전체 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